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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12 11:10
주 기도문
 글쓴이 : 한나
조회 : 3,977  
주 기도문

 

 

[마6:9-13...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해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 마땅히 돌아가야할  무소부재하심의 크심과 위대하심과  명예와

권세와 권능과 영광과 공경과 숭배 등, 최상의 찬양대상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그리고 사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란,

그 본질이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는,

창조주께서 하신 위대한 창조에 대한 지식을 온전히 깨닫는 그 앎 자체가 된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써 제대로 아는 온전한 그 모든 "앎(지식) 자체" 가

창조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대접해 드리는 일이 된다 하겠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 대한 그같은 앎과 지식을 알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그 같은 염원의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경건한 자세를 취하며 말로만 하는 기도는 율법의 옛 기도라면,

앎 자체로 드리는 기도는 오늘날 구원의 새 기도가 된다 하겠다.

 

하나님은 차례를 따라, 즉 오랜 6일 창조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실 크신 분인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무식함 가운데 성급하게도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범하고 지금까지 "예수-천당"  "불신-지옥" 만 외치며 

하나님을 아주 작고 치졸하신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말로만 앵무새 처럼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고 시시때때로 기도하고 있었다.,

이것이 곧 내용은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회칠한 율법적 기도였던 것이다.

 

 

 

 

2.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여기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할 때의 "나라" 는 땅의 인간세상을 말한다.

즉 나라에 임하옵시며는 곧 땅에서 이루어지이며가 된다.

하늘에서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하늘에서는 영생체인 천사들의 나라를 이루셨다.

그러나 인간이 살고 있는 땅의 나라에는 아직 영생체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라에 임해서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달라는 기도는

하늘의 천사들이 영생체를 이루었듯이, 땅의 인간에게도 영생체를 이루어달라는

말씀이다. 즉 하늘의 영생체인 천사들의 천국을 인간이 사는 이 땅으로 유치해서

지상천국을 이루어달라는 기도가 된다.

지상천국이란, 

영생체인 천사와 인간육체가 신인합일하는 천국혼인잔치를 통해서 성취된다.

 

그런데 그같은 신인합일의 천국혼인잔치를 이 땅에서 이루기 위해서는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명백한 지식(앎)이 들어왔을 때

즉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심령창조의 완성에 도달했을 때 가능하다.

2번의 기도는 천사와 한 몸으로 결혼하여 인간이 죽지 않는 영생체가 되도록

간구하는 기도이다. 예수께서 부활(영생)의 때에는 인간이 천사처럼 산다는

말씀이 곧 이에 해당된다.

 

 

 

 

3.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egrave;

일용할 양식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창조란 자연계 창조와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하시는 심령창조,

이렇게 둘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계창조는 이미 끝났음을 알 수 있고, 이제

이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어 그 상급으로 영생을 주시고자 하시는 게

성경의 약속이므로 성경은 99% 심령창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하나님을 알려 주시는 심령창조에는 우리가 반드시 받아 먹어야만 하는

영적 양식이 있는데 그것이 곧 일용할 양식이다.

육적 양식이 아니라, 영적 양식을 일컬어 일용할 양식이라고 한다.

인류가 시대마다 그에 알맞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그것이 곧 일용할 양식이 된다. 

 

이천년 전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는 심령창조를 위해

그 날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러 오신 분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 날의 일용할 양식을 거부하고 오직 과거 유대당의 교리에 고착해 있었으므로

지난 시대의 썩어버린 구 양식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 때부터는 실상이고, 그 이전 유대당은 그 실상에 대한 모형인데

모형에서는 모두 육적이고 육체의 예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영(말씀)이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영적 양식인데 이러한 영적 양식을

감추어서 육적으로 기록하고 육적 예법으로 지켜 행했다면 그것을 비유라고 하는 것이며

비유는 구원의 신령한 진리가 아니고 여전히 사망을 당하는 율법의 구양식인 것이다.

 

그리고 모형에서 뿐만 아니라 예수님 때부터는 실상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신구약

모두 영적인 것을 육적으로 감추어서 기록하였기 때문에 성경은 총체적으로

비유라고 하는 것이다.

 

모형에서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한 광야에서 먹고 살 육적 양식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맛나를 매일 매일 내려주셨다.

그 때에 어떤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고 그날의 하루치만(일용할 양식만) 취하지

아니하고 다음날에 먹을 것까지 선취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에 이틀치를 취한 양식을 다음날에 먹고자 했을 때

그것은 구양식이 되어 썩어버려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 양식(진리의 말씀)을 반드시 그날의 일용할 양식만을

취할 것을 육적 양식을 통해 보여주신 범례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심령양식(영적양식)은  때를 따라 주시는

그 날의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만 그것이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영생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러한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하신 것이다.

 

21세기 오늘날은 추수철이며 예수님의 재림 때이다. 

그런데 이천년 전, 초림 때의 복음의 씨를 뿌리게 하신 어제의 양식을

오늘날 추수철의 양식으로 먹고자 한다면 그것은 구 양식이므로(구교리이므로)

우리를 썩어버리게 한다. 즉 추수철에 열매 맺지 못하게 한다.

 

지난날 복음의 씨를 뿌릴 때는 그날의 일용할 양식으로 먹을 수 있었으나 

오늘날 추수철에 먹어야 하는 오늘의 일용할 양식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은 예전에 씨 뿌리는 복음의 구양식을 먹으면 안되고

열매 맺게 하는 오늘의 새양식(재림주가 주시는 새교리 새노래)을 먹어야만 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구하라고 하신 “일용할 양식” 이다.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egrave;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죄를 짓는다거나 그 죄를 사하여 주는 일은

모두 도덕적 윤리적 죄이거나 사함이 된다. 인간사회에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그 같은 죄를 눈감아 줄 수 있고 용서해 줄 수 있다. 즉 가능한 일이다.

가능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죄의 본질은 인간의 도덕적 윤리적

죄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짓는 죄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곧 죄가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적 죄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만 사함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는

부디 우리의 소경됨과 어리석음을 벗어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빛 밝은 영적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를

씻어버리도록 해주십사 하는 기도가 된다.

 

인간사회에서도 잘못을 범했을 때, 그 잘못에 대한 용서는 그 잘못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하고 그 반성대로 행할 때, 즉 잘못에서 돌아서는 각오와 행함이

있을 때 진정 용서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그 죄에서 돌아서려는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아니했을 때 하나님을 아는 깨달음은 올 것이고’

깨닫게 됨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죄 사함은 뒤따라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말로만 천만번 우리죄를 사해달라고 기도를 한다해도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본질적 죄는 털끝만치도 사해지지 않는다.

사실 그러한 율법적 기도는 전혀 필요치 않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참 진리를 알고자 하는 피나는 노력과 고뇌와 각고의 염원을

담아 헌신할 때 진리를 깨닫게 될것이고, 깨닫게 되면 마침내 하나님을 몰랐던

그동안의 우리의 본질적 죄는 사해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egrave;

하나님의 근본 모습은 흑암의 하나님과 빛의 하나님으로 혼재된

카오스 하나님이다(창1:2).

 

하지만 창조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먼저 빛의 하나님이 자기 안에 있는

흑암의 하나님을 모두 이겨야만 하는 피흘림이 있기 마련인데

이것이 창조주하나님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그러함이 아니고

우리도 그 창조를 받는 피조물로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는

같은 원리에 서 있다.

 

즉 내속에 있는 흑암 부분을 빛의 부분이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박에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 하룻만에 빛의 하나님이 흑암의 하나님을

벗어 던져 이기심이 아니고 긴긴 창조 6일 동안 걸린 고난의 창조였던 것이다.

 

이렇게 빛이 흑암과 싸워서 이긴다는 것이 빛으로의 창조인데

우리가 창조를 받는 과정에서 반드시 흑암도 자기의 지분을 내세워 장애물로

우리 앞에 버텨 서 있기 마련이다.

 

흑암의 정체는 마귀이다. 따라서 우리가 빛의 창조로 전진하기 위해선 반드시

마귀의 시험에서 이겨야만 한다. 빛의 창조에는 반드시 흑암(마귀)과의

싸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빛과 흑암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향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빛의 하나님 쪽으로 가고자 한다면 흑암의 하나님을 이겨야 하고

그 이김이 곧 시험에 들지 않는 일이 된다.

 

그러나 흑암의 하나님(비진리)과 싸우기 힘들어 전진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이곳이 좋사오니 해버리면

그것은 마귀의 시험에 빠져든 것이 되며 악에 넘어진 것이 된다.

우리는 깨어서 미래지항적으로 역동적 창조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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